
1. 작품소개
2016년에 개봉한 곡성(The Wailing)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한국 스릴러의 걸작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단순한 귀신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보고 나니 인간의 본성과 믿음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다시 화제가 되면서 이 영화가 왜 “한국형 스릴러의 정점”으로 불리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독 나홍진은 이전 작품 추격자, 황해에서 보여줬던 현실적인 폭력 대신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공포에 집중합니다.
영화는 종교, 미신, 인간의 광기와 의심이 한데 뒤엉켜 만들어내는 혼돈을 통해 “진짜 악은 외부에 있는가 아니면 우리 안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 그 이상으로 믿음과 불신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2. 줄거리와 분위기
전라남도 곡성의 평화로운 시골 마을. 어느 날 정체불명의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나타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폭력적 발작, 원인 모를 질병, 그리고 연쇄적인 살인 사건까지. 경찰관 종구(곽도원)는 사건의 진실을 쫓지만 점점 깊은 의심과 공포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런데 그 공포는 단순한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믿음이 흔들릴 때 인간이 만들어내는 공포였습니다. 결국 종구의 딸 효진(김환희)이 악령에 씐 듯한 증세를 보이면서 이야기는 비극의 정점으로 향합니다. 무당 일광(황정민)의 굿, 신부의 조언, 외지인의 의문스러운 존재가 얽히며 관객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 혼란에 빠집니다. 저는 이 영화의 긴장감보다 더 무서웠던 건 바로 그 모호함이었습니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끝까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진짜 공포였습니다. 마지막까지 모든 단서가 엇갈리며 진실을 알 것 같다가도 다시 무너집니다. 마치 우리가 현실 속에서도 진실을 믿지 못하는 순간처럼 말입니다. 연출 또한 탁월했습니다. 습한 초록빛의 시골 풍경, 비에 젖은 흙길, 흐릿한 안갯속 인물들은 모두 불안의 시각적 은유입니다. 특히 무당의 굿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입니다.
북소리와 외침이 교차하며 절정으로 치닫는 그 장면에서 저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긴장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인간의 두려움이 신앙과 광기 사이에서 얼마나 쉽게 뒤섞이는지를 완벽히 보여줍니다.
3. 총평
곡성은 단순히 무서운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진짜 무대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감독은 공포의 원인을 초자연적인 존재로 돌리지 않습니다. 대신 두려움에 흔들리고 믿음에 기대다 무너지는 인간 자체를 공포의 근원으로 삼습니다.
주인공 종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선택을 하지만 그 믿음이 오히려 비극을 낳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한계를 절묘하게 보여줍니다. 외지인, 무당, 신부 모두 진실을 말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믿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 혼란 속에서 관객은 결국 스스로 신념의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닭이 울고 문이 닫히는 순간 저는 이상하게도 두려움보다 슬픔과 허무를 느꼈습니다. 믿음이란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깊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곡성은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영화입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귀신보다 무서운 인간의 불신과 죄의식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다시 본 곡성은 단순한 재관람이 아니라 믿음과 불안이라는 인간 본질을 다시 마주하는 체험이었습니다. 공포 이상의 울림을 주는 영화 바로 곡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