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제목: 기담
- 배급사: (주)영화사 오원
한국 공포영화 이야기를 할 때면 장화홍련을 많이 떠올리는데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반드시 언급되는 작품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2007년작 기담입니다. 극장 개봉 당시에는 크게 흥행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용히 회자되는 K-호러 수작으로 자리 잡은 케이스에 가깝습니다. 특히 병원을 배경으로 한 고딕 호러 분위기와 1942년 일제강점기라는 독특한 시대 배경 그리고 세 편의 에피소드가 얽힌 옴니버스 구조. 이 세 가지가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다른 공포영화들과는 확실히 다른 결을 만들어냅니다.
(어느 정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감상 예정이라면 참고하고 읽어 주세요.)
1. 작품소개와 구조 - 사진첩에서 시작되는 세 가지 기담
영화의 시작은 1979년, 노년의 의사 박정남이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면서 시작됩니다. 사진 속에는 그가 수련의로 근무하던 1942년 안생병원의 기록들이 담겨 있고 그 사진들이 한 장씩 넘겨질 때마다 과거의 기묘한 사건들이 되살아나며 세 편의 에피소드가 연결되는 구조입니다. 세 이야기는 각각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병원이라는 공간과 당시 시대 상황(일제강점기) 그리고 죽음과 사랑, 집착이라는 키워드로 느슨하게 연결되며 마지막에 하나의 정서로 모입니다.
2. 줄거리 - 세 가지 에피소드
줄거리는 크게 세 가지 에피소드로 나눌 수 있습니다.
1부 - 시체실의 사랑: 박정남 수련의의 기묘한 로맨스
1942년, 젊은 의대생 박정남(진구)은 안생병원에서 실습을 시작합니다. 그에게는 부모가 정해준 약혼녀가 있었지만 정작 얼굴 한 번 보기도 전에 약혼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후 정남은 병원 지하 시체실 담당을 맡게 되고 밤마다 빈 시체실을 지키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체실에 들어온 한 여성 시신에게 이상하게 끌리기 시작합니다. 하얀 수의, 고요하게 누워 있는 얼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평온해 보이는 표정. 정남은 점점 그 시신에게 말을 걸고 꽃을 올려두고, 감정을 건네어봅니다.관객 입장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감정이입과 동시에 상당히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이야기의 반전은 그 시신이 바로 자신의 약혼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지점에서 터집니다. 죽어서야 얼굴을 마주하게 된 약혼녀, 그리고 살아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서로를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의 어긋난 인연. 이 에피소드는 전형적인 점프 스케어보다 한 편의 청승맞은 고딕 로맨스와 공포처럼 느껴집니다.
2부 - 어린 소녀와 유령 엄마: 교통사고 생존자의 트라우마
두 번째 에피소드는 병원에 입원한 어린 소녀 아사코(고주연)의 이야기입니다. 아사코는 교통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은 아이입니다. 부모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아사코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은 채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 문제는 그녀가 병원 복도와 자신의 병실, 거울 속에서 죽은 엄마의 영혼을 계속 목격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환각이나 심리적 충격으로 여겨지지만 점점 그 모습이 구체화되고 관객이 보기에도 “이건 정말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연출이 이어집니다. 창밖에 서서 아이를 내려다보는 실루엣, 병실 구석에 앉아 있는 듯한 그림자, 아사코가 혼자라고 믿는 순간 들려오는 숨소리. 이 에피소드는 공포와 동시에 굉장히 강한 슬픔을 동반합니다.
3부 - 일본인 의사 부부와 연쇄살인: 식민지 병원의 그늘
세 번째 이야기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일본인 의사 부부에게 초점이 맞춰집니다. 겉으로는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의사, 친절한 남편이자 아내처럼 보이지만 이 부부의 주변에서는 일본 군인들을 노린 연쇄살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합니다. 피해자들은 주로 일본 군인이나 경찰들, 그들에게는 각자 숨기고 싶은 과거와 폭력성이 있고 살해 방식은 점점 잔혹하고 기묘해집니다. 이 에피소드는 단순히 귀신이 사람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전쟁과 지배 구조 속에서 이미 “귀신보다 더한 짓을 해 온 인간들”의 이야기가 오버랩되면서 공포와 동시에 불편한 사회적 감정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세 에피소드는 모두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에 이 세 이야기가 병원이라는 공간, 박정남의 회상, 사진첩이라는 액자 장치로 다시 묶이면서 이 병원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담이었다는 느낌을 남기고 끝이 납니다.
3. 총평 - 사진 속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기담
기담은 병원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공간 위에 1940년대 경성의 분위기, 고딕 호러, 옴니버스 구조를 한 번에 얹은 독특한 한국 공포영화입니다. 크게 소리 지르며 놀라는 타입의 공포는 아니지만 보고 난 뒤에도 특정 장면들이 사진처럼 남아서 가끔씩 문득 떠올리게 되는, 그런 작품에 가깝습니다. 이상, 영화 기담 리뷰였습니다. 오래된 사진 속 인물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 적이 있다면 기담은 한 번쯤 봐볼 만한 한국 공포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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